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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한번에 설교하기 (by 유도순목사님)
이용원 2018-06-16 추천 0 댓글 0 조회 920

사사기 한 번에 설교하기

본문 : 2:6-10

주제 :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2: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2: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2: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2: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강론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로부터 왕이 세워지기까지의 약 350년 간 사사들이 치리하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사사기는 여호수아로부터 왕정(王政)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過渡期)적인 역사입니다. 이점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를 세워주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후계자를 세워주시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출애굽하게 하신 자기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하신 이후 사사시대의 통치체제(統治體制)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사사기를 바르게 접근하는 비결입니다. 그래야만 사사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여호수아서로 돌아가 땅을 분배할 때에 레위지파에게는 어떻게 행해주셨는가를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여호수아서 21:41절을 보겠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는 한 곳에 모여서 살도록 기업을 주신 것이 아니라 12지파가 분배 받은 땅에서 십일조를 바치듯이 조금씩 떼어준 48성읍에 흩어져 거주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신 의도가 무엇인가? 이에 빛을 비춰주는 점이 48성읍 중에는 도피성6개 포함이 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찌하여 도피성으로 6성읍을 택정하라 하셨는가? 오살자가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19:6), 그래서 6성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위인을 48성읍에 흩어져서 살게 하신 의도는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아주 가까운 이웃에 레위인들을 골고루 배치하여 레위인들의 지도 아래 살아가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백성들의 십일조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 이후 사사시대의 통치체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의 통치 체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한 곳에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방곳곳에 흩어져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5:13-14)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어느 교회 설립예배 설교에서 서울 시내에 가로등이 몇 개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약 12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 가로등이 정전(停電)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서울 장안이 암흑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는 가로등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울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몇 명이나 거주하고 있겠습니까? 이들이 서울의 빛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전이 된 상태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사사시대가 암흑시대 같이 되었습니까? 48성읍에 흩어져 거주하게 하신 레위인들이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왕을 세우시지 않은 의도가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됩니다.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하고 요구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삼상 8:5, 9)하셨습니다. 왜 이처럼 경고하셨는가?

이점이 계속되는 8:10-18절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데, “데려다가, 가져다가, 거두어, 끌어다가”, 필경은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삼상 8:17)하십니다. 즉 왕을 세우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착취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왕을 세우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신정제도는 주시고, 또 주시고,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은 어떤 왕이십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열왕기에 등장하는 왕들은 역기능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사사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부분(1:1-3:6)은 사사시대가 혼란에 빠지게 된 원인을 말씀합니다. 둘째 부분(3:7-16)7번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내용이고, 셋째 부분(17:21)은 부패하게 된 원인으로 레위인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사사시대가 암흑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첫째로, 1장에는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이 9번이나 등장합니다. 이 쫓아냄이 우리에게는 선한 싸움으로 적용이 되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는 쇠퇴하게 됩니다.

두 번째 원인은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2:10)합니다. 이는 제자훈련으로 적용이 되는데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 교회는 어두워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정인 원인은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3:6), 즉 세속화되고 우상을 숭배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 치명적인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는 7번의 악순환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좇습니다. 진노하셔서 대적에게 내어주십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구원자를 세우셔서 구원하여주십니다. 그 땅에 평화가 옵니다. 그러자 또다시 망각하고 죄를 범합니다. 또다시 대적을 통해서 징계하십니다. 또 부르짖습니다. 구원자를 세우셔서 구원해주십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3장부터 16장에 이르기까지 일곱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이 사사시대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경각심을 갖게 되는 점은 7번의 악순환이 반복이 되는 동안 48성읍에 흩어져 거주하게 하신 레위인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많은 레위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레위인의 부패상을 고발하는 셋째 부분(17-21)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의 레위인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빛과 소금의 역할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시키고 타락하게 하는 원인 제공자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사사기에는, “그 때에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다는 언급이 후렴처럼 4(17:6, 18:1, 19:1, 21:25)이나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다는 언급이 누구의 무엇과 결부되어 등장하는가를 주목해보아야만 합니다. 레위인들의 타락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스리시는 이 없던 시대가 있었습니까? 이에 대한 답변이 사무엘상에 나옵니다.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자 하나님은 깜짝 놀랄만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하십니다.

시편 50:22절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셨습니까? 사사시대는 왕이 없었던 시대가 아니라 당시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점을 망각(妄覺)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한 시대였던 것입니다.

물론 사사시대는 눈에 보이는 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을 통해서 친히 다스리신 신정시대(神政時代)였던 것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기드온은,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왕이 되소서)”하자,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8: 22-23)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이점이 어째서 중요하냐 하면 신약시대 오늘의 체제가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신정체제(神政體制)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망각한다면 오늘날도 지도자들이 왕이 없는 양 제 멋대로 행함으로 사사시대와 같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염려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셔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22:18)고 메시아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 한 사람이 한 민족으로 번성한 것이 선민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통해서 천하 만민으로 하여금 복을 얻게 하시려는 계획을 이루어 나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여호수아, 사사기로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사시대가 타락하게 된 근본원인은,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겼기”(2:20, 개역)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조와 세운 언약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2: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다”(2:1)고 말씀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15:18)하신 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2:12)는 것은 단순한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메시아언약을 버렸다는 의미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오늘의 원인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아언약, 즉 복음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이는 사사시대만이 아니라 구약시대 내내 그러했으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복음을 등한히 하게 되면 사사시대와 같은 암흑한 시대가 되고 만다는 것이 사사기가 말씀하고 있는 경고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원계획을 중단함이 없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救援)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3:9, 15)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구원자에 사사시대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세움을 받은 구원자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한 참 구원자에 대한 예표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눈에 보이는 왕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왕 노릇하실 진정한 왕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이를 망각하고 제 멋대로 행하는데 있습니다. 이를 망각하고 제멋대로 행하고 있는 오늘의 레위인이 누구입니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한 그리스도인들이요, 특히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목회자인 것입니다.

사사시대의 통치체제는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고도(高度)의 신정체제(神政體制)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체제가 그러합니다. 문제는 이에 화답(和答)하지 못한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를 인식했기에 다윗은,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32:9), 즉 왕인 내가 너희를 말이나 노새 취급을 해야만 따라오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결국 왕을 세우셔서 그렇게 단속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구약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새 언약 하에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달라야만 하는가? 역시 말이나 노새같이 자갈과 굴레로 단속해야만 복종한다는 것입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사랑에 이끌려서 자발적인 순종을 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깊이 생각해보아야만 하겠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한 사사시대입니다.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주 은혜를 잊었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함께 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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