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를 맞이하여 행운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 설을 맞아 집안이 두루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 즐거운 설이 되기를 기원하오며 새해 소원 성취하십시요.
· 즐거운 설을 맞아 가정에 웃음과 기쁨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 새해에 더욱 건강하시고 사업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 2012년 소망하던 모든 일들에서 풍성한 결실 맺으시길 기원합니다.
· 2012년 새해 가족 모두 화목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2년 임진년, 희망찬 새해 뜻깊은 명절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 건강하고 행복 가득한 2012년이 되시길 손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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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 [ 歲拜 ]
초하룻날에 하는 새해의 첫인사.
내용아침 일찍이 남녀노소가 모두 새옷(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 뒤에 자리를 정리하여 앉는다. 그리고는 조부모·부모에게 먼저 절하고, 형·누나 등 차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을 하여 새해 첫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는 일가친척과 이웃어른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요즈음은 또 직장 관계로 해서 회사 사원들은 회사 윗사람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기도 한다. 세배를 드려야 할 어른이 먼 곳에 살고 있을 경우, 정월 15일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옛날에는 30∼40리까지도 걸어가서 세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배하러 온 이에게 대하여 어른에게는 술과 음식을 내어 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은 주지 않고 약간의 돈, 또는 떡과 과일을 준다. 또 상중에 있는 사람은 정월보름날까지 출입하지 않는다.
세배 때 궤연(几筵 : 죽은 이의 혼령을 모셔둔 곳)을 모신 집에서는 먼저 궤연에 조문하고, 상주에게 인사를 한 다음, 웃어른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차례로 세배한다. 웃어른에게 세배를 할 때는 절을 하고 나서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오.” 등의 새해 인사말을 한다.
세배를 받는 이도 “새해에는 승진하기 바라네.”, “새해에는 소원성취하기 바라네.” 등의 한마디씩 덕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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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의 정의]
설날 아침(元旦), 집안 어른들께 큰절로 인사드리는 것.
[내용]
설날의 차례가 끝나면 집안의 어른들께 웃어른부터 순서대로 절을 하고 새해 첫 인사를 드린다. 농가에서는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집안의 어른들에게 먼저 세배하고, 일가친척들에게는 성묘를 한 후에 세배한다.
그리고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다. 세배를 초닷새 안에만 하면 실례는 면한다. 세배를 하면서 손아랫사람들이 어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하면 어른들은 손아랫사람들에게 “새해는 소원성취하게.” 하는 등 처지와 환경에 알맞은 말을 한다. 이것을 덕담이라고 한다.
마을에 상청(喪廳)을 모신 집이 있으면 찾아가서 상청에 조문하고 상주에게 인사를 한 다음에 일가친척들 중에 나이가 많고 항렬이 높은 어른부터 시작하여 그 동네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른, 이어 나이 차례, 항렬 차례로 세배를 한다. 상(喪)을 당한 사람은 보름까지 집안출입을 삼가야 한다. 그리고 섣달 그믐날 밤에 묵은해를 보내는 뜻으로 인사하는 것을 따로 ‘묵은세배’라고 한다.
세배하러 온 이에게 대해서는 어른에게는 주식(떡국이나 술)을 내놓는 것이 상례이겠으나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약간의 돈 또는 떡과 과실을 준다. 세뱃돈은 ‘복돈’이라고 하여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많은 돈을 주지 않고 조금 주더라도 많이 받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지역사례, 상징성
[지역사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동마을의 경우 55세 전까지는 세배를 다니는 편이고, 55세 이상이 되면 집에서 세배를 받게 된다고 한다. 여타 지방도 이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상징성]
새해 첫 인사말은 세배나 덕담이나 언어주술이 포함된 것으로 언령사상(言靈思想)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새해에 복을 받으라는 인사는 예축적(豫祝的)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새해에 복을 기원해 줌으로써 한 해 동안 아무 탈 없이 그리고 소망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고 축하해 주는 의미를 가진다. 이때의 복은 인사를 받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당사자 혹은 가정의 복일 수도 있으나 주로 개인 지향의 복이며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복이다.
최근경향근래에 농가에서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경로의식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마을 어른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청년회에서 단체로 세배를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부녀회에서 음식을 준비하여 어른들을 대접하고 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것은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 정담을 나누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매우 바람직하다. 흔히 설은 개인적이고 폐쇄적이며 소극적인 혈연 중심의 명절이라 하고, 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마을공동체의 명절이라고 한다.
즉, 설이 혈연을 중시하는 명절이라고 한다면, 대보름은 지연을 중시하는 명절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설날에 청년회와 부녀회의 주도로 마을 어른들을 모셔 놓고 단체 세배를 하는 것은 혈연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지연적인 유대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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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스트레스(stress)를 명절 페스티벌(festival)로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명절이 다가오면 누구나 막연한 설레임을 갖는다. 오랜 만에 가족 친지와 만나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음식을 나누며 지난 한 해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명절이 되레 스트레스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돈, 일, 말은 3가지 주요 스트레스 요인이다. 세뱃돈, 설상 차림비, 선물비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물가와 더불어 가장의 어깨를 짓누른다. 음식 장만으로 인한 가사노동의 부담은 여성들에겐 큰 스트레스다. 모처럼 가족들이 큰 울타리안에서 모이는 날, 어떻게 하면 명절 스트레스를 가족 축제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하이패밀리 가정사역 평생교육원 김향숙 원장이 기독인들에게 그 해법을 제시했다.
△기왕이면 남는 장사를 하자 = 어차피 할 일이라면 즐기는 쪽이 낫다. 명절의 힘은 흩어진 가족을 불러 모은다. 고향을 찾고 친지들을 만나면서 단단한 가족네트워킹을 경험한다.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세뱃돈 수금(?)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은 아이들도 자신의 뿌리를 깨닫게 된다. 경제적 이치로 따져 보아도 설날 며칠의 노고와 비용은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칭찬은 풍성히, 불편한 말은 최소한으로 하자 = “애들 공부는 잘해? 너 어느 대학 갈 거야? 언제 결혼 하냐? 회사도 안다닌다면서 요즘 뭐해? 아직도 과장이야? 너 살이 더 찐 것 같다. 애는 언제 가져? 나물 맛이 왜이래? 동서한테 배워라.” 가족간에 상처를 부는 언어폭력들이다. 무조건 칭찬하라. “어머님 솜씨는 죽어도 못 따라 가겠네요” “형님, 자식 하나는 제대로 키우셨어요!” “여보, 수고했어, 당신이 자랑스러워”. 격려의 말 한마디에 명절 스트레스는 발도 못 붙인다.
△여성들을 ‘푸드 테라피스트’(food therapist)로 승격시키자 = 음식이 빠진 명절을 상상할 수 있을까. 뱃속의 포만감은 마음의 만족감으로 이어진다. 음식은 치유다. 음식을 만드는 여성들의 수고를 노동으로 평가절하하지 말자. 그들을 패밀리 레스토랑의 ‘푸드 테라피스트’라 여기자. 존중하고 감사와 감탄을 표현하자. “우와, 오늘 요리는 최고였어요. 박수!” 정신적 보상에 신체적 고단함은 순식간에 달아난다.
△다양성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라 = 다문화 사회는 가정 안에도 존재한다. 나와 다른 생각, 종교, 문화, 언어 등등. 매설된 지뢰와 같다. 잘못 밟았다간 폭발해버린다. 흩어진 파편은 가족들의 심장을 향한다. 피하라. 더 나은 대화의 주제가 얼마든지 있다. 행복했던 일, 기도제목, 감사거리, 최근 읽었던 책, 유머, 어린 시절 추억, 결혼이야기, 가훈 등등. 피할 수 없다면 차이를 존중하고 즐기라.
△공동분담으로 짐을 덜자 = 명절 행사는 가족 공동의 책임과 권리로 돌리자. 비용은 분담하고, 음식 장만은 간소하게, 설거지는 번갈아가며, 뒷마무리는 함께 할 때 가족애는 더 깊어진다. 뷔페식 상차림은 어떤가? 고기류는 큰 누나가, 각종 나물류는 막내가, 전은 둘째가…. 하루 한 끼 정도는 여자들을 부엌일로부터 면제시키자. 남성 요리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스페이스 클리어링’으로 깔끔하게 = 공간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을 ‘스페이스 클리어링(Space-Clearing)’이라 한다. 옛날 어른들은 대청소를 했다. 헤어지기 전에 마음의 대청소를 시도하자. 명절을 보내면서 쌓아두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종이에 적어 태워버린 후 허그로 마무리 한다. 집안의 어른이 화해와 용서를 선포한다.
△예배로 마무리 = 무엇보다 명절 당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리자. 찬송하고 기도하며 지난 1년 동안 어려웠던 일, 가족간 추억, 부모님에게 감사했던 일들을 하나님안에서 녹이며 가족간의 영적 유대를 돈독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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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유래에 대하여......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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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유래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생활과 산업사화라는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생활과 산업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 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입니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 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 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 옷을 즐겨 입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같은 한민족이라는 일체 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옷을 즐겨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같은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 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 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2.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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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하나는 '한 살 나이를 더 먹는'에서의 '살'에서 왔다고 한다. 곧 '살'이 '설'로 된 것인데 그 근거로 '머리'가 '마리'에서 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유추할 수 있음을 든다.
다음으로는 "장이 선다."와 같이 쓰이는 '선다'의 '선'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설다(제대로 익지 않다)', '낯설다' '설어둠(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때)'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또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첫번째 두번째 어원에 따르면 '설'의 의미는 새해 새날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세번째 견해에서는 설날을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의 '신일'이란 어휘를 챙기게 된다. 한 해의 마지막 무렵을 흔히 '세밑, 세모'라고 부른다. 특히 설날의 전날인 섣달 그믐을 가리킨다.
아이들은 '까치 설날'이라 부른다. 옛말로는 " 셜"이라 하는데 ''은 '작은'이란 뜻이다. 그러나 동지(24절기의 하나, 태양력으로 12월 22일쯤)를 가리키는 '작은설'과 혼동하면 안 된다.
동지는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해(태양)의 힘이 가장 약화된 날이다. 그 다음 날부터 낮이 시나브로 길어지므로 아마도 1년의 출발 기준으로 생각하여 '작은 설'로 삼았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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