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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한 문제
이용원 2009-10-12 추천 0 댓글 0 조회 1524
자살하면 정말 지옥 가나요?


자고 일어나면 ‘일가족 동반자살’이란 참담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 승용차 안에 몸을 묶고 불을 지르고, 가족을 태운 승용차를 몰고 저수지로 돌진한다. 일가족이 여행을 떠나 여관에서 약을 먹기도 한다. 자녀들과 함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이제 낯익은 살풍경이 돼버렸다. 오죽하면 어린 자녀들과 함께 죽는 것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지적까지 나왔을까. ‘자살할 때는 아이들은 남겨놓자’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통계청은 지난 한햇동안 자살한 사람을 8600여명으로 집계했으나 경찰청은 1만2천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현장 확인을 거친 경찰청 통계가 더 정확할 것이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앞질렀다니 ‘자살 공화국’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만하다.

왜 이렇게 자살이 빈발하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경제상황이 안 좋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동기가 하나같이 빚에 몰리거나 실직 등으로 인한 생활고란 점이 이를 입증한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이 며칠 새 억대가 오르고 거리엔 외제차가 넘쳐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상대적 박탈감도 중요한 원인이다. 빚을 갚지 않을 경우 가해지는 채권자의 괴롭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정해진 것도 자살을 택하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의 환율과 유가 ‘쇼크’에 의해 당분간 우리 경제는 침체의 늪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신용불량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분당과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노무현 대통령 탈당 등으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대립도 경제에는 악재가 분명하다. 각종 민생·경제 법안과 추경예산, 세법 개정안 처리가 난항을 겪을 것이 불보듯하기 때문이다. 자살을 막기에는 모든 것이 역부족이다. 한마디로 자살 방지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빈부격차 해소와 극빈층 생계지원 같은 경제논리와 사회복지 차원이 아니다.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내 그들을 보듬어주는 행정력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자살은 10명 가운데 1명만이 ‘성공’한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자살을 결심한 ‘9명’이 늘 방황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에게 다가가 자살 충동의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 한, 언젠가는 자살이 자연사를 앞지르는 불행한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답답한 마음에 늘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대통령선거 정책공약 자료집인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후보 노무현>을 집어들어본다. 노 대통령은 ‘따뜻한 대한민국’을 4대 비전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고, 20대 정책목표 중에는 ‘빈부격차 해소와 중산층 70% 시대’도 포함돼 있다. 노 대통령이 당분간 당적 없이 민생·경제 문제 해결에만 전념하겠다고 하니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어낼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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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자살 행렬을 막아라
절망 권하는 사회, 소망 주지 못하는 교회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과연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는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의 숫자가 36명에 달하고, 지난 10년 사이 자살자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살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피부에 와 닿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장에서 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회장 이경해 씨가 자결했다. 추석 밤에 날아온 비보였다. 8월 4일에는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몸을 날렸다. 꾸준히 대북사업을 추진하며 남북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정 회장의 죽음에 실망한 한 노인의 뒤이은 자살은 더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다.

카드 빚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벌써 수 차례 각종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자신의 목숨 뿐 아니라 가족의 생명까지 함께 저버린 행동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깊은 절망에 빠졌다. 가히 자살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이상 현상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살을 감행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과 절망, 분노와 두려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이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왜 그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살신드롬에 빠진 한국사회

전문가들은 최근 급증하는 자살의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한다. IMF 이후 급격히 늘어난 빈곤층과 무너지는 가계 경제가 이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이유다. 최근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빈곤형 자살', 장기실직자 수가 13만 명에 달하는 현실, 국민 12%가 실질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통계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국내 소득상위 인구 1.6%가 국내 소비 25%를 차지할 정도로 심화된 빈부격차 역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분석에 대해 어떤 이는 "과거에는 더 힘들어도 잘 살았다"는 논리를 들이댄다. 그러나 소위 '어려웠던 시절'에는 국민 대다수가 힘들었다. 그러기에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했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절망의 수렁으로 미는 것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오세택 목사(두레교회)는 "예전에는 성실하게 일하면 희망이 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생계가 어려워 자살을 생각했던 교인을 상담한 경험이 있는 김정숙 씨(가명·32)는 "빈곤의 문제로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어려웠던 과거를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고 주장한다.

부의 불균형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병폐가 아니다. 바른 신앙을 가진 기독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과제이다. 많은 예언자들의 관심이 여기에 있었고, 예수님 역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였다. 김형국 목사(나들목사랑의교회)는 '빈부격차 심화'를 최근 늘어나고 있는 자살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교회가 이들을 돕기 위해 구조적인 제도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어려움 당하고 있는 이웃을 돕는 것이 자살을 막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 김형국 목사를 비롯한 많은 목회자들의 지적이다.

가난한 사람 양산하는 사회, 침묵하는 교회

절대적인 빈곤의 늪에서 죽음을 결심하는 사람 못지 않게 자살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깊은 우울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혼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한 의무인 교회가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취재 중에 만난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교회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얼마 전 자살을 결심했다가 마음을 고쳐 먹은 강준호 씨(가명·29)는 죽음을 결심했던 당시, 교회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죽음을 생각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깊은 우울증이 그의 마음을 점점 지배하기 시작했고, '죽음으로 이 지긋지긋한 삶을 마무리하자'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점점 크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교회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가장 힘든 순간에 교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죽음의 유혹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마음을 다잡은 강 씨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교회가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최근 상담 과정에 등록해 자신과 같은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것을 꿈꾸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관심 속에 죽어 가는 사람들

2년 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서미영 씨(가명·52)는 아직도 교회에 대한 원망이 깊다. 물론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교회 때문만은 아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군에서 받은 상처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들은 결국 자신의 방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본인은 물론 아들도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절망의 순간에 교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죽은 아들은 자살을 결행하기 전 지도교역자와 교회 친구들을 만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의 이야기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친구니까'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현재 서 씨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가 교회에 발길을 끊은 것은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교회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교인들의 차가운 시선이 싫어서이다. 자살을 했다는 이유로 같은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은 아들의 장례식을 외면했고, 이후에도 그의 죽음을 두고 안 좋은 소문들이 귀에 들려왔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기대했던 서 씨에게 이런 반응은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물론 위의 두 사례의 전적인 책임이 교회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인의 상당수가 '자살은 지옥에 가는 큰 죄다'라는 정죄에만 몰두하다 정작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냐는 서 씨의 절규를 그저 외면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자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정신 질환 역시 한국교회가 반성해야 할 편견으로 지적되고 있다. 4년 동안 조울증에 시달리다가 최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민영동 씨(가명·43)는 다니던 교회 목회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상담했다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귀신이 들렸으니 기도로 쫓아내자"는 것. 민 씨는 목사의 말을 믿고 기도원에도 다니고 새벽기도, 철야예배에 정성으로 참석했으나 별 다른 효험이 없었다.

교인들도 민 씨를 만나면 기도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가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교회의 시선 역시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었다. 다른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질병은 왠지 숨겨야 할 무엇으로 치부되었다. 결국 민 씨는 용기를 내어 정신과 의사를 찾았고, 최근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며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 수없이 자살을 생각하고 실제 자살 기도를 한 적도 많았다고 고백하는 민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믿었던 교회가 아니라 병원이었다.

크리스천마음연구원 공동대표 김세준 목사는 정신 질환을 백안시하는 한국교회 풍토에 대해 "정신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해서 교리적으로 재단하는 데에서 오는 문제"라고 진단한다. 단편적 성경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사랑과 애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교리로 편하게 생각하는 데에서 오는 폐단이라는 것이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가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돕기 위해 전문가 그룹과 연대하고 교회 안에서 마음의 문제를 예방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나야 한다고 믿는다. 예비 목회자인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 깊이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정신의 병에 대한 편견 극복해야

'어느 사회에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존재해왔다'는 말로 최근의 자살신드롬을 넘기기엔 교회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막중하다. 세상이 절망을 노래하고 소망이 끊어질 때, 예수 안에 참된 소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기독인의 의무이다. 물론 그 의무가 단순한 선언이나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보내는 마지막 몸짓에 이제는 교회가 귀를 열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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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면 정말 지옥 가나요?

"자살 용서받지 못할 중죄" vs. "구원 문제는 단정 불가"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최근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교계에서는 자살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세 갈래의 논의들이 펼쳐졌다. 우선 기독교인 대다수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자살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주장이다.

보수적인 신학자·목회자들은 "자살이 하나님 앞에 큰 죄이기는 하지만 구원받지 못할 죄는 아니다"는 태도다. 마지막으로 진보적인 계열에서는, 자살한 개인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몰고 있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고 교회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주를 이루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한다. 최근 교계 언론에 올라오는 몇몇 칼럼은 이러한 교회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이 칼럼들은 "자살은 지옥행 티켓을 목숨을 주고 사는 일이다" "자살은 천국의 소망이 없는 허무한 인생의 결론이다"고 못박는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스스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이 내 건 이유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이러한 신념은 어거스틴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가 깊다. 어거스틴은 「신의 도성」에서 "영생의 나라는 자살한 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자살했다고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은 결코 해서는 안 될 무서운 죄악이다"고 말한다. 이상원 교수(총신대)는 9월 1일자 <빛과 소금>에 '자살한 사람도 구원받는가'라는 칼럼을 기고해 "자살이 천국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조건은 아닐 것이다"면서도 "자살을 택한 사람은 하나님에게 엄중한 문책을 받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권성수 목사(동신교회)도 "성경은 자살을 기록하면서도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경의 생명중시 원리를 깨는 무서운 죄악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살을 '무거운 죄'로 보는 주장은 사회적 경각심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죄를 개인적인 문제로만 다루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임성빈 교수(장신대)는 "물론 자살은 죄다. 하지만 자살하는 사건을 대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에 앞서 개인을 정죄하는 것은 바리새적인 태도다"고 지적했다.

진보적인 신학자·목회자들은 자살이 죄라는 주장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러한 주장이 자살의 자리에 몰린 사람들에게 어떤 힘이 될 수 있을지를 반문한다. 그리고 교회가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춘다.

채수일 교수(한신대)는 <기독교사상> 9월호에 기고한 '자살은 죄인가'라는 글에서 "자살한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는 질문은 교리적·신학적 질문은 되지만, 윤리적 질문은 될 수 없다"면서 "교회가 취할 태도는,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적 상황을 분석하고 책임을 자살자 자신에게 돌리거나, 자살은 죄라는 단순한 종교적 신념을 선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자살을 강요하는 사회적 조건을 극복할 책임과 노력을 나누어져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현주 목사도 <기독교사상> 9월호에 '늘어나는 자살에 교회는 무책임인가'라는 글에서, 자살을 죄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뤘다.

이 목사는 "자살은, 인간이 저지르는 다른 모든 잘못된 행위와 마찬가지로, 악의(惡意)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지(無知)에서 오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는 일은 어느 뛰어난 개인의 몫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감당해야 할 과제다"면서 "교회들이 자살 현상에 대해 뒷짐지고, 그건 우리 일이 아니라며 우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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